집단이 주는 광기.
2019년 1월 10일 목요일 오전. 인터넷에 택시기사 분신 사건이 떴다.
'카카오톡 카풀 반대'하던 택시기사가 또 분신해 숨을 거뒀다. 스스로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고 했으며, 정부와 카카오톡 카풀에 대한 불만이 수록된 유서를 남겼다고 한다.
필자는 공감능력이 결여되거나 그들의 어려움을 이해 못할 정도로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냥 보통 부류에 속한 사람으로서 궁금한 점이 한가지 있다.
카카오톡 카풀 이슈 관련해서 영업을 중단하고 집회에 참석한 택시기사들은 과연 무엇을 원하는 걸까?
표면적인 이유가 아닌 각자의 진심이 무얼까?
카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단순 집회 참여가 아닌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카풀을 반대하는 것은 생계가 위협받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데, 생계에 큰 문제가 생기기도 전에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다른 구성원들은 그들의 죽음을 이용하여 더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결국 2명의 사상자가 나왔고, 앞으로 몇이나 더 이런 선택을 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카풀이 나오기 전에도 대낮 대로변에 손님없는 택시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그때는 택시수를 제한하자는 목소리는 없었다. 그들은 같은 집단이기 때문이다. 화살을 동지에게 돌리기는 싫었을 것이고, 내가 파이를 많이 못 먹더라도 같은 택시기사들이 파이를 조금씩 먹으니 불평하지 않았다. 전체 파이는 줄지 않고 그대로이니.
하지만, 그 파이를 택시기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위협하자 이번과 같이 벌떼처럼 일어선다.
집단이 주는 광기가 아닐 수 없다.
그간의 자기네들의 불친절을 새카맣게 잊고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며 집회를 하는 그들을 과연 어느 누가 동조할 것인가?
4차 산업혁명으로 가는 현재 시점에서 택시조합은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단순히 카카오톡 카풀 사업을 반대할 것이 아니라 다가오고 있는 무인택시를 대비하여 카풀과 공조할 방법은 없는가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인가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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